TITLE | 소반훈련을 아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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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A | 17-10-09 |
우리 예전에 쓰던 작은 밥상, 소반 기억나시죠? 고기와 전 등 형형색색의 반찬이 푸짐하게 차려진 큰 상이 아니라, 자그마한 크기로 밥과 국에 김치와 나물 정도로 반찬 가짓수 많지 않아도 밥 한 끼 먹기 좋던 간편하고 소박한 상차림, 소반이 있었습니다. 가정경제도 소반을 차려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것을 ‘소반훈련’이라고 부르고 제안합니다. 가정의 소득이 갑자기 반으로 줄었을 때를 가정하고, 과연 여러 가지 지출 항목 중에서 무엇을 줄일 수 있는지 계획해 보는 겁니다. 일종의 가정경제 민방위훈련이지요.
지출 패턴을 파악하세요! 지출항목을 절반으로 줄여보는 가상의 소반훈련을 위해서 먼저 현재 우리가 얼마 쓰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가정경제 상담을 하다보면 한 달에 얼마를 벌고 쓰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가계부를 써 보려 노력은 하지만 ‘약발’이 그리 오래 가진 않았지요. 요즘은 스마트폰 가계부 앱도 좋은 게 많지만, 우리 가정의 지출 패턴을 파악하는 데는 통장 이체내역과 카드명세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좋습니다. 일 년 내내 가계부를 쓰려하지 말고 1년에 딱 한번이라도 집중해서 3개월 정도의 카드명세서를 항목별로 분류하고 월 평균을 내어보시길 권합니다. 점검하다보면 생각지도 않게 나가는 항목이나, 꼭 필요하진 않아도 이제는 어느새 고정비용이 되어버린 대여비 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항목을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나면, 무슨 지출을 줄여갈 수 있는지 파악하고 실행하기 쉽습니다.
가치관이 반영된 지출입니까? 일상의 소소한 지출을 없애고 식비와 외식비를 아낀다고 하면 수십 만 원 정도는 줄여볼 수 있지만 소반훈련의 목표인 ‘지출을 절반으로 줄이기’의 시도는 금세 한계에 달합니다. 더 이상 줄이기 어려운, 정말 포기하고 싶지 않은 ‘가치관과 삶의 질’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항목이 바로 자녀 사교육비, 주거비용(관리비와 대출이자, 월세), 차량유지비(할부금 포함)입니다. ‘소득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의 소반훈련이지만, 조금은 냉혹하게 가상의 전쟁을 치러내야 합니다. 자녀 사교육비는 ‘그 나이 또래에’ 당연히 지출할 현실적인 비용의 문제가 아닌, 부부의 교육관(觀)이 반영된 가치관 더 나아가 인생관의 문제임을 인정하고 부부가 함께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벌 수 있습니까? 주거비용이나 차량유지비용 역시 삶의 우선순위 앞에 직면하면서 ‘내려놓음의 지혜’까지는 아니어도 결단의 의지와 방향은 확인해봐야 합니다. 무리한 담보대출 원금과 이자를 감당하면서 넓은 평형의 새 아파트를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집을 줄여갈 것인가, 월세를 줄이고 작은 전세로 갈 것인가, 차량을 처분하고 할부금 없이 중고차를 타면서 최소한의 아이들 대학자금 마련 저축은 유지할 것인가 등등 가정의 상황에 맞춰 다양한 지출항목과 재무목표를 교환하면서 가정의 비상경영계획을 세워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은 불편한 얘기지만, 가정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재무적인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지출을 점검해야 함에도 막연히 ‘더 벌어서’ 소득을 통해서만 해결하려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재무상담사로 만 10년을 지나고 보니 참으로 다양한 사례를 보았습니다. 맞벌이를 하다가 갑자기 외벌이로 돌아선 대기업 직장인 부부, 자신감 넘치던 전문직 고액연봉자의 갑작스런 질병과 후유장해, 강남에 빌딩이 두 채나 있던 분이 사업 실패로 현재 소형 화물차 근로자가 되어 몇 천원 안 되는 톨게이트 요금도 야간할인을 받으려 고속도로 휴게소 비좁은 차안에서 잠을 청하는 사연은 저의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세계 최고를 달리던 대기업 조선사들의 경영난으로 근로자들에게 닥친 구조조정과 하청회사의 연쇄 폐업, 실업 등 요즘 뉴스를 보면 참으로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최상의 상황을 희망하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세요! 안타까운 것은 부정적인 변화에 대한 대비나 적응훈련 없이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치면 ‘비경제적’인 문제로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정서적인 혼란과 충격에 휩싸이고, 돈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던 문제와 가족 간의 불편한 감정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부부간 갈등이 격화되기도 합니다. 중년 세대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퇴직으로 소득이 줄게 되면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 앞서 국민연금을 당겨 받는 큰 손해(연 6%씩 삭감)를 보거나 보험·연금 등 금융상품을 해약하는 등 재정적인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소득이 절반으로 줄게 되었을 때’를 가정하는 소반훈련은 평소에 미리 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변화가 와도 사랑하는 가족과 가정경제만은 지킨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가볍게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지나친 경각심으로 혼자만의 입장을 강요하거나 당장의 생활비를 줄이자는 잔소리를 하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에 충분합니다. 월 고정 지출을 줄여보려 노력할 때도 갑자기 큰 금액을 줄이려하지 말고 부부가 함께 공유하는 적정한 선, 지출관리의 가이드라인을 정한다 생각하면서 작은 금액이라도 줄여보는 겁니다. 소반훈련도 일종의 ‘재무대화’인데 바쁜 일상 속에서는 대화하기 쉽지 않으니, 교외에 있는 카페나 시원한 바람이 부는 한옥마을에서 소반 찻잔을 마주하면 어떨까요?
함께 마주하면서 ‘호프플랜’하는 겁니다. 최상의 상황을 희망(Hope)하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Plan)하는. 성공이든 실패든 함께 할 의지로 부부가 함께 소반훈련에 임한다면, 장차 미래에 나이가 들어 실제로 마주할 ‘소반’에 밥과 국 김치와 나물 정도 올려놓더라도 이때를 회상하며 행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박 상 훈 지속가능한 가정경제연구소장 금융과행복네트워크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