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재정통장의 보금자리는 ‘정서통장’ | |
---|---|---|
DATA | 17-10-09 | |
로또 1등 당첨자 58% "배우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조금은 황당한 통계지만, 실제로 2014년 당시 로또 1등 당첨자들에게 조사한 결과 42%만 ‘배우자에게 알렸다’고 답했다. 반대로 열 명 중 여섯 명 즉 절반 이상이 배우자에게 1등 당첨 사실을 숨긴 셈이다. 순식간에 당첨금으로 ‘재정통장’은 늘어났지만, 이러한 행복(?)을 나누고 함께 할 그 무엇이 준비가 안 되었을까...
돈을 저축하는 재정 통장이 있듯 부부 사이에는 정서 통장이라는 것이 있다. 정서 통장은 서로에게 느끼는 호감, 존중, 배려, 감사 등 긍정적 감정의 총합을 뜻하는데, 이는 재정통장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저축하듯 노력해 쌓아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심리 치료전문가 최성애 박사는 '라이프 통장'이라는 개념을 통해 재정, 건강, 정서, 도우미 네 가지 통장이 부부 문제를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이중에 가정의 불화와 위기를 초래하는 핵심적인 이유를 ‘정서 통장’의 고갈로 보고 있다. 로또복권에 당첨되었지만 그 사실을 배우자에게도 알리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은 ‘정서통장’이 준비되지 못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일확천금’의 행운을 얻었지만 그 재정통장이 가정의 행복으로 들어앉을 보금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재정통장과 함께 정서통장이 균형적으로 갖춰지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받을 정도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수 션과 탤런트 정혜영 부부. 그들에게도 일상에서 바쁘고 힘들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때 역시 평소 쌓아온 감사한 배려가 쌓인 ‘정서통장’이 위력을 발휘한다. 정혜영 씨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남편은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그 속에서 ‘감사’를 찾는 사람이에요. 아이들 보는 거 많이 힘들잖아요. 엄마인 저도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는데, 남편은 아이들에게도 무척 잘해요. 우리 부부가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건 크든 작든 매사에 감사하며 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남편은 제가 ‘감사’하며 살게끔 저를 변화시킨 사람이에요” 봉사와 나눔을 통해 기쁨을 함께 하고 서로 일상 속에 감사할 줄 아는 그들은 참 건강한 가정이다. 통장의 이자가 쌓이면, 이자가 원금에 가산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리의 마법처럼, 그들의 정서통장은 커가고 있다.
정서통장이 재정통장을 이끌었던 우리 가족
부끄럽지만 칼럼을 쓰는 필자의 고백을 통해 정서통장에 대한 사례를 나누고자 한다. 나와 아내는 동성동본 겹사돈이라는 특별한 인연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났다. 외갓집에서 처음 만난 그날의 일기장과 고등학교 시절까지 주고받던 연애편지를 간직하며 서로를 추억하던 우리는 ‘서른 즈음에’ 만났다. 13년 만에 만난 기쁜 날이었지만 나에겐 부끄러운 만남이었다. 신앙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 금융투기에 빼앗긴 마음의 여유와 상처, 몸은 지쳐 폐결핵에 검붉은 얼굴로 그녀 앞에 선 나는 수천만 원의 빚쟁이 청년이었다. 당시 아내는 처녀시절 타던 차를 팔고 예적금을 깨어 내 빚을 갚아줬다. 결혼예물은 강남 지하상가 점포 정리하는 매장서 구입한 5만원 짜리 14k 반지가 고작이었다. 예복은 동대문 새벽시장가서 7만원짜리 원피스로 마무리했다. 경기도 성남의 어느 달동네 전세 2천2백만 원짜리 다세대주택 9평이 우리 신혼집이었다. 미안한 건 분명 나인데, 아내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이런 문자를 남겨주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서로의 마음이 가장 좋은 집이래, 나는 자기 마음속에 정말 큰 집일 수 있을까?”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감격의 문자다. 우리의 신혼 생활은 소박했으나 서로가 배려하는 마음만은 부자였다.
당시 직장이었던 여의도까지 왕복 네 시간의 먼 길이었지만 난 만족했다. 결혼 1년 즈음에 소박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시고, 주변 친척이 도움을 주셨다. 같은 금액으로 16평 빌라에 살도록 전세를 내어주셨다. 당시 임신한 몸으로 마을버스를 타고 언덕길 오르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때 역시 소박한 꿈으로 우린 행복했다. ‘아들 지후가 뛰어다닐 무렵 놀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감사하게도 그 소망은 결혼 4년 만에 이뤄졌다. 23평짜리 오래된 주공아파트. 입주할 때 허름한 창틀에 하루 종일 페인트를 칠하면서도 우리는 기뻤다. ‘햇볕 쬐는 베란다에 빨래를 널 수 있다’ 며 그때도 아내는 행복해 했다. 좋은 아파트에 멋진 차로 시작한 주변 친구들이 있어도 그녀는 열등감에 휘둘리지 않고 소박하게 생활해 주었다. 재무상담사로 성장하는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런 감사함에 나는 좀 더 가정에 충실하고 내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하나님 안에서 서로에 대한 감사, 배려, 존중의 마음을 잊지 않고 살면서 우리는 ‘정서통장’ 을 키워왔다.
지난 11년간 재무상담사로 수많은 가정을 상담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수고했지만(과거) 지금의 상황이 어려워(현실) 서로에게 감사함이 없는 가정들의 모습이었다. 물론 요즘은 ‘피로사회’ ‘시간부족사회’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기불안과 경쟁심화, 맞벌이로 바쁜 일상이다. 하지만, 고단한 일상 속에 숨겨진 삶의 보석같은 순간들을 찾아내고 의미를 새겨줄 때 미래는 좀 더 희망적이 될 것이다.
기억과 추억은 다르다. 스쳐간 세월의 수많은 장면들 속에서 행복하고 감사했던 때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그 순간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돌이켜’ 추(追)억하자. 가족을 위해서 애써왔던 서로의 진심을 바라보고 여전히 바쁜 삶을 살며 수고하는 지금의 모습을 격려하자. (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아무리 절약해서 적금이나 펀드로 수익을 남겨도 부부싸움 한방에 날아가는 경우를. 또한 나는 믿는다. 정서통장이 충분한 사람들은 적금을 깨도 행복하다는 것을 ! ) 적금금리나 펀드 수익률보다, 정서통장의 금리를 높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박 상 훈 지속가능한 가정경제연구소장 금융과행복네트워크 이사 |